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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본 후 다시 펼친 <파친코>, 소설의 힘

by memo1867 2025.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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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소설과 드라마, 같은 이야기 다른느낌

          역사를 넘어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을 읽고 난 후, 마음에 남은 것들

          드라마를 본 후, 원작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

소설 파친코 책 표지 이미지
이민진 장편소설 <파친코>

드라마 《파친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배우들의 열연, 감각적인 연출, 웅장한 음악까지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책장에 꽂혀 있던 원작 소설을 다시 펼쳤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도 읽었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스토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전해주는 감정의 깊이가 달랐다.

이민진 작가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영상이 보여줄 수 없는 인물들의 내면과 사소한 생각들, 그리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이 텍스트 속에 오롯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소설과 드라마, 같은 이야기 다른 느낌

드라마와 소설은 같은 이야기를 다루지만, 전달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 드라마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서사를 구성하고, 원작에서는 비중이 적었던 백이사(코 한수) 캐릭터의 이야기를 대폭 확장했다. 또한, 시각적인 요소가 강한 드라마답게 한 컷 한 컷이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드라마라도 소설이 줄 수 있는 감정의 깊이까지 담아낼 순 없었다. 소설은 드라마보다 훨씬 더 서정적이고 섬세하다. 선자가 어린 시절 오사카로 건너가면서 느꼈을 두려움,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겪었던 차별, 그리고 가족을 위해 끝없이 강해져야 했던 삶이 한 문장 한 문장에 녹아 있다. 특히, 선자가 자식들을 위해 끝없는 희생을 감내하는 과정은 책으로 읽을 때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드라마에서는 빠르게 지나갔던 순간들이 소설에서는 더욱 깊이 있게 묘사되며, 독자가 인물과 함께 숨 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역사를 넘어, 사람들의 이야기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소설 《파친코》 첫문장에 나오는 글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굳건히 희망을 가지고 계속 살아간다. 나의 삶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의지뿐이다. ' 라고 나에게 전달되었다. 

《파친코》는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 간 가족이 4대에 걸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그 당시의 한국인들이 겪었던 치열하고 애잔한 이민의 역사를 다룬다. 하지만 역사적 배경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선자가 일본에서 살아가며 겪는 차별과 멸시다. 읽어내려가며 주인공과 함께 분노도 느껴졌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은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다. 교육을 받을 기회도 적었고, 좋은 직업을 얻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많은 조선인들이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외에는 선택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은 이러한 현실을 단순히 비극적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도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들,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려 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더 강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 보면, 단순히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이런 감정을 느꼈겠구나’라는 공감이 생긴다. 만약에 내가 그 시절 그때, 그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그 역사의 한 지표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소설을 읽고 난 후, 마음에 남은 것들

책을 덮고 나서 가장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것은, 선자의 삶 자체가 하나의 역사라는 점이었다. 한 개인의 인생이지만, 그 속에는 한국인들의 아픔과 강인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선자는 불행한 일을 많이 겪지만, 절망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을 키우고, 차별받으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한다.

이것은 단순히 선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같은 여자로서 이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은 낸 마음이 먹먹하게 만들면서 상상할 수 없는 존경심을 일게 만들었다. 역사가 남긴 흔적은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 속에 있다. 선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문득,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차별받고,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파친코》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드라마를 본 후, 원작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

드라마 《파친코》가 아름답고 감동적인 작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감동을 더 깊이 경험하고 싶다면, 원작 소설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소설은 드라마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 내려가며, 선자가 살아낸 순간들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선자’들의 얼굴이 떠오르게 된다.

이 책은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생각해야 할 역사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드라마가 끝난 후 원작을 다시 한번 펼쳐보자. 그 안에서 우리가 놓쳤던 감정과 이야기들이 다시금 살아날 것이다.